장비가동율에 대한 짧은 이야기
독일군 전차대대의 낮은 가동율은 자주 독일 전차가 크고 비싸며 복잡하기만 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이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독일군의 전차 가동율이 낮은 것은 대부분의 경우 기계적 신뢰성 문제가 아니라 전투 중에 손상을 입은 차량들 중에서 단기간에 폐차 처분을 받고 부대 장비재고표에서 아예 빠져나가는 일이 적기 때문인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1. 여기 전차 정수 45대의 1개 대대가 있습니다. 이 대대는 한 전투에서 43대가 손상됐는데 이중 30대는 모두 회수를 마쳐서 단기간에 수리가 가능하고 1대는 전투에서 완파, 12대는 피격된 상태에서 회수에 실패, 2대는 손상 없이 바로 전투에 투입 가능합니다. 이 경우 대대의 가동율은 6.25%입니다. 하지만 이 대대가 1일 뒤에 전차 30대 중 20대의 수리를 마쳤고 그동안 2대가 마저 손실돼서 당장의 가동차량이 20대가 됐다면, 대대의 실제 장비가동율은 62.5%가 됩니다. 하지만 장비충족율은 68%죠. 정수 대비 가동율로 들어가면 44%가 되는군요.

2. 여기 전차 정수 45대의 1개 대대가 있습니다. 이 대대는 전투를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전차 20대가 기계적 신뢰성 문제로 탈락했고 전량 회수되어 지금 수리가 진행 중입니다. 이 경우의 대대 가동율은 55.5%입니다. 그러나 이 20대가 그날 중으로 수리불가 판정을 받아 완전손실로 처리될 경우, 대대의 실제 가동율은 다시 100%가 됩니다. 장비충족율과 정수 대비 가동율은 공통적으로 77%고요.

독일군의 가동율 낮은 부대는 대부분 1의 상황에 해당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독일 전차의 가동율이 낮은 건 전차가 상당히 강인한 생존성을 가지고 있고, 회수부대가 신속하게 손상된 차량을 회수해 오기 때문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거죠. -_-;;; 단순하게 기계적 결점이 문제라고만 주장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2번 상황처럼 기계적 문제로 가동율이 팍 떨어지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아니, 대전 후반기가 되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만... 이건 기계가 나빠서가 아니라 전장환경이 더러워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_-; 말 그대로 장비결함이나 잦은 고장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경우는 독일군에선 43년 쿠르스크 전투 초기의 판터연대 정돕니다. 노르망디 전투 당시 철도운송이 불가능해져서 파리에서 노르망디까지 자력으로 수백 킬로미터를 행군해 가야 했던 SS101중전차대대도 이 범주에 속할 수 있겠군요.) 가동율을 제대로 따지고 싶으면 그 부대가 그 가동율을 보일 때를 전후한 전투상황, 신규장비의 보충, 군단급 이상으로의 후송, 군단급 이상에서의 수리차량 재배속, 등등 다양한 요소를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이런저런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고서 그냥 가동율만 논해서는 될 일도 안 됩니다.

 - 혁이가 -
#by윤민혁|2007/06/26 07:38|군사 이야기|트랙백|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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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soletteat 2007/06/26 10:34#
과연... 그런 것이었군요.
독일제 장비의 높은 신뢰성은 2차대전때부터 계속된 전설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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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JOSHat 2007/06/26 12:48#
독일다운 꼬장함이 문서상의 숫자를 속이고 싶어하는 유혹을 이기는 거군요....
현재 한국과는 대극인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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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あさぎりat 2007/06/26 17:09#
저정도라면 2차대전시의 국방군 정비원들은 대인배 소리를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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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한교at 2007/06/26 17:17#
와..

정말 잘 보고갑니다.

스터디스터디..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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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안모군at 2007/06/26 17:37#
그것이 통계의 무서움이죠. 국산화 80%라고 해서 까봤더니 중량비율 80%라던가, 부품갯수 비율 80%라던가 하는 예가 과거에 좀 있었듯이, 그것을 어떻게 뽑느냐, 그것을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서 값은 가변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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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IEATTAat 2007/06/26 18:15#
통계의 오묘함을 무시하고 수치만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이군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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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FREEBirdat 2007/06/26 18:44#
뭐 옛부터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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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윤민혁at 2007/06/26 19:35#
아니, 몇 분이 뭔가 오해하고 계신데요... 저 통계방식은 과장 및 축소보고의 대명사로 알려진 소련군조차도 지킵니다.; 어느 나라건 가동율은 저런 식으로 추산돼요. 단지 독일군 전차가 상대적으로 생존성이 좋은 게 가동율이라는 통계수치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한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덤으로 다른 나라의 가동율 수치는 부분적으로는 빠른 신규장비 보충, 즉 그 나라의 산업생산력이 독일보다 확실히 우세하다는 의미도 됩니다.; 정비를 통한 장비재생 스피드 역시 산업능력에 직결되는 문제고, 장비가 중간에 퍼지지 않도록 꾸준한 정비지원능력을 제공하는 것 역시 결국은 산업능력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독일이 꼬장꼬장하거나 다른 나라보다 정직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다른 나라보다 어려운 여건이었기에 저런 일이 발생했다는 얘기 또한 되는 겁니다.;;;

즉, 통계수치를 100% 믿지 말라는 얘기일 뿐입니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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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라피에사쥬at 2007/06/26 20:56#
베트남전 당시 미군 정보당국은 모 공세 이후 남베트남내 NVA의 보급능력 약화 정도를 추려내어 전투능력을 평가했는데, 이 계산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던 것이, 그 누구도 NVA단위부대의 정확한 일일보급소요를 모르는 까닭에 대충 미군 보병부대 기준으로 1/2하는 식으로 수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68년 이후 공세적 정규전을 행하기 시작한 NVA라면 또 대충 맞아떨어질지 모르겠는데[..] 그 이전은 확실히 말이 안되는 수치였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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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_솔_at 2007/06/26 21:09#
통계수치를 100% 믿지말라가 아니라, 정확한 통계면 믿어야겠지만 통계의 '의미'를 알아야한다는 이야기겠군요. 장비가동율, 충족율, 정수대비 비율 등 분자와 분모를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하나 또 배워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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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눈팅at 2007/06/27 08:33#x
그럼 질문 있습니다.
편성 병력은 말씀하신 대대의 경우 5명 X 45대 이라고 하면 가동하지 않는 전차의 병력은 어디서 무얼하게 되는 것인지요?
대대장이 하급자의 전차를 탄다고 하면 줄줄이 내려오는지..
전차장은 그렇다 하면 다른 사람들은 전차 회수 및 수령 때문에 전차에 있는건지 궁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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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윤민혁at 2007/06/27 08:47#
전차를 잃은 승무원들은 예비인력으로 해당 부대 또는 상급부대 예하 보충부대에서 대기합니다. 그러다가 수리된 전차를 다시 맡거나 - 이 과정에서 당연히 인원조정이 이뤄집니다. 승무원 전사자나 부상자는 항상 있을 수 있으니까요. - 또는 승무원 결원이 생긴 전차의 승무원 보충에 활용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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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눈팅at 2007/06/28 09:12#x
답변 감사드립니다.
설익은 걱정인 것 같기는 한데 전투 안 해본 친구는 계속 안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질문 드렸습니다.
2차 대전의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였다면 운 없는(?) 친구는 계속 다른 사람들과 전투를 하거나 전차 수령받기만을 기다렸을것 같습니다. - 아마 전사할 가능성이 더 높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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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EssexClassat 2007/06/28 17:59#x
좋은 글입니다만.. 솔직히 윤민혁 본좌님의 이글루는 왼쪽 상단의 사진 땜시 들어오기 꺼려집니다. 이만저만한 혐짤이 아닌지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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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장갑냐옹이at 2007/06/29 14:40#
마켓가든 작전 당시 아른험으로 자력 행군한 훔멜 중전차 중대가 떠오릅니다. 12대가 행군 중 퍼지고, 2대가 졸졸졸 도로 타고 가다 강하병들의 PIAT에 돈좌. 노르망디 전역 당시도 제116 기갑 사단 판터 상당수가 초장거리 행군으로 퍼졌고, 그외도 미칠듯한 장거리 행군에 판터와 티거가 퍼진 경우는 넘쳐나죠. 중전차라서 중형 전차인 4호보다 행군에 대한 압박이 더 컸다고 봅니다.
Posted by Ast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