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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gla
조회수 :15636 추천수 : 12

DMZ 559 GP 포격작전
DMZ 포격사건
사단장으로 한참 지휘력이 발휘되는 1973년 2월 27일, 춘계 DMZ 표지판 보수작업 실시계획을 인민군측에 통보하였다. 이어서 28일에는 유엔군사령부에서 작업 승인지시가 내려왔고 군단은 3월 7일과 8일 양일간을 작업일로 지정해 주었다. 그런데 인민군측은 도전적인 행위로 중앙분계선 바로 북쪽에 559 GP(감시초소)를 불법 설치하고 20여 회에 걸쳐 육성비난을 하면서 우리의 비위를 건드려 보려고 하였다. 다시 도전책의 하나로 인민군 559 GP 바로 남쪽에 있는 우리측 표지판 0654번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휴전협정 위반을 자행하였다.

나는 적의 심리전 시도를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어떤 함정을 만들고 있다고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공세적인 나는 그것들이 적의 함정임을 알면서도 우리 지역에 마음대로 드나들며 우리의 표지판을 제거하는 따위를 내심 용서할 수 없었다. 특히 당시는 남북협상이 시작되어 상호 비방을 안하도록 해서 쌍방 모두 방송을 중단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정보참모에게 우리측 표지판 보수작업을 명령하면서 문제의 표지판인 0654번은 남북협상중에 문제가 발생되면 안되니 일단 작업을 보류하라고 일렀다.
그런데 당시 군단장이 3월 5일 사단을 방문하여 내가 신중론, 즉 적의 함정임을 설명하였으나 그는 0654번 표지판을 포함한 작업 강행을 지시하였다. 또한 군단 정보참모가 사단 정보참모에게 작업강행을 지시했다. 이리하여 3월 7일의 표지판 보수작업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이날 작업을 완료하고 귀대 도중 인민군은 아군 지역의 우리에게 기습사격을 가하여 황대위와 김하사 등 2명을 중상케 하는 무자비한 만행을 저질렀다.
나는 보고를 받자 예상대로 적의 함정에 빠졌음을 인식하고 인민군에 대한 응징책을 준비시키는 한편 마이크로 적측에 사격 중지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사격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민군 측에 있다고 수차 경고하였다. 그러나 인민군은 나의 경고를 무시하였다.

나는 인민군에게 합법적인 응징을 하리라 마음먹고 관측기를 상공에 띄워 포병 관측장교로 하여금 표적인 559 GP를 관측케 하여 사단 포병에게 사격을 명령하였다. 155밀리 곡사포, 105밀리 곡사포는 즉각 불을 뿜어 인민군 559 GP를 강타하는 한편 우리에게 불법사격을 가하였던 적 보병 배치선에 포탄을 작렬시켰다. 그런 다음에 부상당한 황대위와 김하사를 안전지대로 구출하기 위해서 백린 연막탄을 발사하고 철수작전을 전개시켰다. 그런데 그 연막탄으로 말미암아 전지역에 불이 붙어 지뢰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적 보병이 도망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격후 5분 만인 14시 20분, 한신 대장 후임 군사령관 최세인 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지휘관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현장에서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나 대신 새로 부임한 참모장이 전화를 받았다. 군사령관의 전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상자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하게 작전하라.」


군사령관 전화통화 10분 후인 14시 30분, 군단에서는 군단장 지시라며 군단 참모장이 사단 참모장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환자 구출을 위하여 무리하게 사격하지 마라.」


이 두 경우, 군단장의 지시는 부상자 황대위와 김하사를 버려도 좋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 지역에서 적이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우리에게 사격하여 생긴 불상사인데 부상 장병을 구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뉘앙스 풍기는 지시를 내리다니 될 말인가. 나는 따를 수 없었다. 나는 정당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리하여 끝내 부상 장병을 구출, 후송하게 함으로써 포격작전을 끝냈다.
이날 밤 나는 김일성과 인민군을 골탕먹이기 위하여 사단내 전트럭을 동원하여 라이트를 켠 채 DMZ 남한한계선까지 진출시켰고 부분적으로 중앙분계선 남단까지 진출케 하였다. 이 바람에 북한측에서는 난리가 났다. 김일성은 즉각 전군비상 및 동원령을 내렸고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았다.
후에 이 사건을 계기로 유엔군사령관은 전쟁방지를 위하여 해명 담화를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번 사건은 북한측의 휴전협정 위반으로 일어난 것이고 유엔군은 부상병 구출을 위한 자위적인 작전을 전개한 것 뿐이다. 전투할 의사는 분명히 없다.」





백골부대를 떠나면서



1973년 4월 3일, 마침내 나의 사단장직을 해임한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나는 담담한 심정으로 상부의 명령을 대기하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였으므로 상부의 어떤 결정에도 따른다’는 신조였기에 마음은 홀가분하였다.
그런데 군단장은 사단장 이취임식 석상에서 장병들에게 내가 육군 본부로 영전하여 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

4월 6일 사단장 이임식에서,


「북진통일의 성업을 완수 못하고 국민의 군인으로서 국민에게 죄를 짓고 사단장직을 떠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백골 부대 사단 장병은 나의 의도를 받들어 북진통일의 선봉사단 임무를 기필코 완수할 것을 당부하며 백골 사단의 건승과 장병의 무운장구를 기원한다.」


라고 간단히 이임사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니 장병과 그의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내 마음 역시 눈물이 흘렀으나 꾹 참고 태연한 걸음으로 찝차에 올랐다. 찝차는 군악대의 ‘이별의 곡’이 울리는 가운데 천천히 서울쪽을 향하여 움직였다. 나의 전속부관 이계복 대위는 찝차 뒷자리에서 울먹이면서,


「사단장님은 진정으로 팻튼 장군을 닮은, 조국을 사랑하는 장군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나를 위로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수행부관은 ‘장군님의 별은 하나지만 맥아더 장군의 5성처럼 빛나는 왕별입니다’라고 말하며 어디서 구했는지 5성의 별판을 나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후일의 일이지만, 1985년 9월 20일 이산가족 평양방문단의 일원으로 함경남도 도민회 이상순 회장이 평양에 갔을 때 호텔로 정치보위부 고위간부가 찾아와,


「함경남도 신흥군 출신의 박가 성을 가진 요란한 사단장 요즘 뭘 하오?」


라고 질문하여 이 회장은 섬뜩한 생각이 들어 상세히 설명 안하고 태연하게,


「나는 사업가니까 군 관계는 전혀 모르오.」


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그 공산당 간부의 표정으로 보아 3·7포격사건으로 박정인 장군에 대해 상당히 원한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포격사건이 적측에 안겨준 충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가히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예비역 준장 박정인 회고록 '풍운의 별' 중

http://blog.naver.com/last_resort/40012787601 님 블러그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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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la 현충일을 맞이하여 잊지 말아야하는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시고 정치정세와 본인의 안위에 연연하지 않고 군인으로서 본연의임무에 충실하신 분들을 존경하면서 이글을 회원님들께 올립니다...200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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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hemian 북괴에 한해서는 이에는 이로,눈에는 눈으로.200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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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군사학교 오호.,,배경이 그러햇군요...그동안 선배님들한테 입과 입으로만 들었었는데,,20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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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ki 비슷한 사례는 제법 있습니다. 소총 사격에 무반동포로 진지를 날려버린 사례나...뭐 요즘은 과거에는 북한 눈치만 봤다는 분도 잇지만...^^20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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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002 이분 3대가 직업 군인인 집안200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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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버터 음............알고 싶습니다.... 무반동포 사례말이에요...궁굼해 지는군요.200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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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사나이 김영삼정부때 일겁니다. 북한 넘들이 월경을 했을겁니다. 아군 GP에서 경고방송하고 그 다음 경사를 하는데..북한쪽에서 총과기관총을 쏘고 한동안 총격전이 벌어지다 북한넘들이 중화기를 발사하니깐 당시 소대장이 유엔사교젼수칙에따라 무반동포를 직사를 해 버린거죠. 아군은 피해 없엇고 북한 진지쪽으로는 엠블런스 왓다 갓다하고 그랫답니다.2007-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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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포대장 김영삼정부땐지는 몰라도... 97년인가 98년인가에도 3사단에서 적 GP에 무반동총 날린적 있습니다... 당시 6사단에서 포병대대 작전보좌관시절 평시임무가 GOP작전지원이었는데 사단우측연대 OP에서 3사단쪽에 교전상황 있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작전투입한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전 97년 3월에도 교전상황이 있었습니다. 우측연대의 좌측중대OP에 관측장교로 투입되어 있던 시절 아군 수색작전시 교전이 있어서 매복작전후 취침하다말고 다시 올라와 실제사격임무(지명사) 하달해서 준비선상탄 장전하는 등 대대가 발칵 뒤집힌적도 있었고요...200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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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군인 minki님 사례중 하나 확인 그후 북한에들 총질 잘 안헸음200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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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y Ghost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15&article_id=0000044844§ion_id=0&menu_id=0 십년전 97년 GP교전 기사입니다.200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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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바위 북한애들에게 만큼은 이에는 이,눈에는 눈이라야 그넘들 정신차립니다.200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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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미친개는 무자비하게 몽둥이로 때려잡는것이 만고의 진리라는것 잊지 말기요 ......../200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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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젼링클 97년 7월 22일 3사단 GP교전 말인가요? 직접 교전에 참가했던 사람에게 들었던 것이지만... 자잘한 문제도 있었고.. 언론에서는 상대적으로 축소 발표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워낙에 비밀로 할 것을 부탁드리기에 더는 말할 수 없지만요... ^^ 그래도 그 이야기 들으면서 역시 병장의 힘은 위대하구나... 를 느꼈습니다.2007-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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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7162 요즘좌빨들은 그럼전쟁하잔말이요??라고 반문할것이다...빨갱이는 힘으로 제압해야...걱정됨니다 만약 전쟁이 벌어지면 총구를 돌리는 좌빨은 업을까요...2007-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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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땡이사절 7162님 생각은 기냥 기우일 뿐. '좌빨'의 정의가 뭐고 누구를 지칭하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한나라당 지지자도 아니고, 한반도에서 남북한간의 전쟁은 원칙적으로 반대니 좌빨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싶군요. 하지만 내 나라, 내 사회, 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확고하게 지켜내겠다는 자세는 분명함. 뜻도 분명치 않은 좌빨이란 단어 사용은 걍 즐입니다.200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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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무장공비들이 한창 설쳐대던 60년대 중반에 5군단 지역에서 대간첩 작전을 수행하면서 DMZ에 155mm 500발을 포격한 일도 있습니다.200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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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택 박정인t사단장님 반갑습니다. 77년도 군번입니다. 73년도의 사건이 전설로 듣던 군번입니다. 현시대에도 사단장님같은 군인이 우리의 전선을 지켜야 된다고 싱각됩니다. 정치적으로 당하기만하고 주고도 큰소리 못치는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열불이 납니다. 북한애들은 이쪽에서 약하게만 나올것으로만 생각을 갖고 도발을 합니다. 하지만 이쪽엥서 확실하게 대응을 하면 응전에 대한 태세가 준비가 덜되어 있기 때문에 까불지 못합니다. 그들의 약점이지요, 이제는 확실한 대응을해야 합니다.2007-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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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s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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